최근 공인중개사가 임차인에게 다가구주택의 선순위 임대차 정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발생한 보증금 미반환 사고에 대해 중개사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다가구·다세대 주택 임대차 시장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임차인의 재산권 보호라는 긍정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중개사들이 다가구주택 중개를 기피하는 ‘전세 중개 포기’ 현상이 확산하며 시장 왜곡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 강화된 책임, 막힌 정보 접근권
이번 판결의 핵심은 중개사가 임대인이 제공하는 정보에만 의존하지 말고,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선순위 권리관계를 확인하고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한 점입니다. 다가구주택은 건물 전체가 단일 소유이므로, 신규 임차인은 자신의 보증금 순위를 파악하기 위해 기존 세입자들의 보증금 총액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장벽이 존재합니다. 다른 세입자의 보증금 액수 등은 개인정보보호법상 보호 대상으로, 임대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중개사가 이를 강제로 확인할 법적 권한이 없습니다. 즉, 대법원은 중개사에게 ‘확인 의무’를 부과했지만, 현행법은 ‘확인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중개사들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할 수 있는 배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다가구주택 중개 자체를 꺼리고 있습니다.
■ ‘전세 중개 포기’ 현상 확산…임차인·임대인 피해 우려
중개업계의 보수적인 영업은 시장 전체에 연쇄적인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우선, 임차인들은 전문가의 조력을 받기 어려워져 전세사기와 같은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될 수 있습니다. 중개사의 기피로 인해 비전문적인 경로로 계약을 진행하거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깜깜이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임대인 역시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신규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기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 상황이 심화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주택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 제도적 보완 없인 시장 왜곡 불가피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장 왜곡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구체적인 대안으로는 ▲임대인의 선순위 보증금 정보 제공 법적 의무화 ▲계약 이전 단계에서 중개사에게 임대인 동의 없는 확정일자 부여 현황 열람 권한 부여 등이 거론됩니다. 정보의 투명성을 확보해 임차인을 보호하고, 중개사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판결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시장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교한 입법적 조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