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강남권 빌딩 임대시장에서는 이 같은 임대인들의 하소연이 늘고 있다. 테헤란로와 강남대로변의 프라임·A급 오피스에는 임차 수요가 몰리며 공실 매물을 찾기 어려운 반면, 불과 몇백m 떨어진 이면도로에서는 중소형 빌딩의 공실이 쌓이고 있다.
겉으로 보면 강남 오피스 시장은 호황이다. 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핵심 업무지구의 프라임 오피스는 공실률이 1% 안팎에 수렴하며 사실상 ‘공실 절벽’에 가까운 상황이다. AI·IT 기업과 대형 스타트업의 사옥 확장 수요가 이어지는 데다, 임차를 넘어 향후 사옥으로 활용할 우량 자산을 미리 확보하려는 매입 수요까지 가세하면서 좋은 건물에 대한 경쟁은 오히려 치열해지고 있다.
문제는 모든 건물이 그 수혜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테헤란로와 강남대로에서 한 블록만 벗어나도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진다. 이면도로에 위치한 중소형 빌딩을 중심으로 공실이 누적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공실률이 10% 안팎까지 높아지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강남이라는 주소 하나만으로 임차인을 끌어오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의미다.
“임대료는 강남인데, 건물은 강남이 아니다”
이면도로 빌딩의 가장 큰 문제는 임대료와 건물 경쟁력 사이의 간극이다.
주변 핵심 상권의 임대료가 오르면서 건물주 역시 높은 임대료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임차인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달라졌다.
비슷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면 굳이 접근성이 떨어지고 시설이 노후한 이면도로 중소형 빌딩을 선택할 이유가 줄어든다. 특히 최근 기업들은 단순히 책상과 회의실만 있는 사무실을 찾는 것이 아니다. 직원들의 출퇴근 편의성, 건물 이미지, 공용시설, 주차, 보안, 쾌적한 업무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따진다.
결국 ‘강남에 있다’는 사실보다 ‘강남에서 어떤 건물인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는 셈이다.
스타트업 성장 둔화도 중소형 빌딩에는 악재
벤처투자 시장의 선별적 집행도 중소형 오피스 시장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처럼 투자금을 확보한 스타트업들이 사무실 규모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시장에서는 중소형 빌딩도 자연스럽게 임차 수요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투자 시장이 보수적으로 변하면서 비용을 줄이거나 기존 사무실을 유지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특히 직원 수가 수십 명 수준인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경우 임대료가 조금만 올라가도 사무실 이전이나 확장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
반면 규모가 큰 기업들은 오히려 핵심 입지의 우량 오피스로 이동하고 있다.
돈을 쓸 수 있는 기업은 좋은 건물로 몰리고, 비용을 줄여야 하는 기업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 사이에 낀 중소형 빌딩의 공실이 늘어나는 구조다.
이제 임대인도 ‘공실 관리’가 필요하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임대인들이 아직도 과거의 임대시장 공식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남이니까 이 정도 임대료는 받아야 한다.”
“조금 기다리면 들어올 임차인이 있다.”
“옆 건물도 이 가격에 내놨다.”
하지만 임차인은 옆 건물의 임대료가 아니라 자신이 지불하는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비교한다.
공실이 발생한 뒤에도 임대료만 고수하다 보면 한 달, 두 달의 공실이 어느 순간 6개월, 1년으로 늘어날 수 있다.
임대료 100만원을 지키려다 수천만원의 임대수익을 놓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중소형 빌딩은 공실이 장기화될수록 단순한 임대료 문제가 아니라 건물의 경쟁력 자체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공실이 많은 건물이라는 인식이 생기면 신규 임차인을 유치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 오피스 시장, 이제 ‘입지’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결국 현재 강남 오피스 시장의 핵심은 호황과 불황의 문제가 아니다.
수요가 어디로 몰리고 있느냐의 문제다.
프라임 오피스에는 기업들이 줄을 서지만,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형 빌딩에는 임차인이 나타나지 않는다.
같은 강남, 같은 테헤란로 권역에서도 건물의 위치와 규모, 신축 여부, 주차, 관리 상태, 임대료, 인테리어 수준에 따라 임대 성적표가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강남 빌딩 시장에서는 단순히 “강남에 있는 빌딩”이라는 사실만으로 자산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공실이 발생한 건물이라면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언제 임차인이 들어올까?”가 아니라,
“왜 임차인이 우리 건물을 선택하지 않는가?”
테헤란로 프라임 오피스가 ‘공실 절벽’을 보이는 지금, 이면도로 빌딩의 공실은 단순한 경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임대인이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