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BS 건축 탐구 집 유튜브
처음 이 집을 보면 이런 생각부터 듭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사는 집일까?” 유럽의 오래된 성을 연상시키는 웅장한 외관, 건물을 따라 반복되는 아치, 그리고 거대한 정원까지. 얼핏 보면 기업가나 상당한 자산가가 지은 대저택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집의 주인은 의외였습니다.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해온 평범한 맞벌이 부부입니다. 전세살이에서 시작해 내 집을 마련하고, 대출금을 갚고, 다시 돈을 모았습니다. 부부는 자신들의 과정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도토리 모으듯 조금씩 모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모은 돈과 부부가 평생 꿈꿔온 집에 대한 생각이 합쳐져 연면적 약 99.6평, 329㎡ 규모의 특별한 집이 탄생했습니다.
## 여행에서 본 유럽의 풍경을 집으로 가져오다
이 집을 이해하려면 먼저 부부의 여행 이야기를 알아야 합니다. 부부는 여행을 다니며 유럽의 오래된 건축물과 골목길, 정원에 매료됐습니다. 특히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아치와 석조 건축물의 분위기를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집을 짓게 된다면 이런 공간에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짓기도 전부터 여행지와 여러 상점을 다니며 마음에 드는 조명과 인테리어 소품을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사용할 곳도 없었지만 언젠가 자신들의 집을 지을 날을 생각하며 하나씩 사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오랜 기다림은 결국 현실이 됐습니다. 가든 코디네이터로 활동한 아내의 공간 감각과 건축업에 종사했던 남편의 현장 경험이 만나 세상에 하나뿐인 집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 무려 51개의 아치가 있는 집
이 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치’입니다. 하나둘 정도가 아닙니다. 건물 안팎에 만들어진 아치가 무려 51개에 달합니다. 아치는 단순히 유럽풍 분위기를 내기 위한 장식만은 아닙니다. 건축주 부부는 아치를 집 전체를 연결하는 하나의 건축 언어로 사용했습니다. 특히 건물 외부에는 약 5m 높이의 거대한 콘크리트 프레임을 만들었습니다. 처음 보면 마치 유럽의 오래된 수도원이나 성의 회랑을 보는 듯합니다. 이 구조물은 건물의 웅장한 비례감을 만들어주는 동시에 정원과 건축물을 하나의 공간처럼 연결해 줍니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에는 정원의 나무를 보호하는 역할까지 고려했습니다. 덕분에 이 집은 단순히 ‘큰 전원주택’이 아니라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자신만의 얼굴을 갖게 됐습니다.
##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건축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아치가 늘어나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추가되면서 철근과 레미콘 사용량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결국 공사비는 당초 예상보다 크게 불어났습니다. 부부에게는 가장 어려운 순간이었습니다. 평생 모은 돈으로 짓는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갈 것인가. 부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가지고 있던 주식도 처분하고 금붙이까지 정리하며 공사비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공정에서는 직접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비계에 올라 작업을 하고,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했습니다. 집 한 채를 완성하기 위해 부부의 시간과 노동까지 들어간 것입니다.
## 모든 것을 비싸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집이 모든 부분에 비싼 자재를 사용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부부는 철저하게 ‘선택과 집중’을 했습니다. 눈에 크게 띄지 않는 마감재에는 합리적인 가격의 자재를 사용하고, 5mm 합판이나 노출 콘크리트처럼 비교적 단순한 재료도 과감하게 활용했습니다. 대신 사람들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것에는 돈과 정성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조명입니다. 오랫동안 하나씩 모아온 샹들리에와 펜던트 조명을 집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여기에 51개의 아치와 곡선이 더해지면서 비교적 평범한 마감재를 사용한 공간도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비싼 자재를 많이 사용하는 것보다 ‘어디에 돈을 써야 공간이 달라지는가’를 보여주는 집인 셈입니다.
## 담장을 높이는 대신 정원을 마을에 내놓았습니다
이 집에는 또 하나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정원입니다. 일반적인 대형 단독주택이라면 사생활 보호를 위해 높은 담장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집은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정원을 도로 쪽으로 열었습니다. 꽃을 감상하는 정원, 차를 마시는 정원, 먹거리를 키우는 정원, 그리고 나무 사이를 걸을 수 있는 숲길 정원까지. 하나의 거대한 정원이 아니라 성격이 다른 네 개의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풍경을 집주인만 독점하지 않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꽃을 보고 나무를 감상할 수 있도록 마을 쪽으로 열어두었습니다. 그래서 이 집의 정원은 개인의 마당인 동시에 작은 동네 정원처럼 기능합니다.
## 지하에 만들어 놓은 ‘유럽의 골목길’
더 재미있는 공간은 지하에 있습니다. 보통 단독주택의 지하라면 창고나 주차장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집의 지하는 전혀 다릅니다. 유럽 여행에서 보았던 작은 골목길과 상점 같은 분위기를 실내에 옮겨왔습니다. 신발을 벗지 않고 그대로 들어갈 수 있고, 가족뿐 아니라 손님이나 이웃도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집 안의 거실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공간입니다. 누군가 찾아오면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하면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열린 사랑방’입니다. 정원이 마을을 향해 열려 있다면 지하 공간은 사람을 향해 열려 있는 셈입니다.
## 집은 결국 ‘얼마 올랐느냐’만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이 집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100평이라는 크기도, 51개의 아치도 아닐지 모릅니다. 부부가 집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집을 이야기할 때 흔히 가격부터 이야기합니다. 얼마에 샀는지, 지금 얼마인지, 앞으로 얼마나 오를 것인지가 집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 부부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환금성이 좋은 집보다 자신들이 정말 살고 싶은 집을 선택했습니다. 여행에서 좋아했던 풍경을 기억하고, 수년 동안 조명을 모으고, 돈이 부족하면 직접 공사에 참여하면서 30년 동안 마음속에 그렸던 공간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집의 진짜 가치는 평당 가격만으로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아침에 정원을 바라보는 시간, 아치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 이웃과 차 한잔을 나누는 순간, 그리고 여행에서 가져온 조명 아래에서 가족이 함께 보내는 저녁. 그 모든 시간이 이 집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30년 동안 도토리를 모으듯 돈을 모아 완성한 약 100평의 집.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크고 비효율적인 집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건축주 부부에게 이곳은 부동산 상품이 아니라 오랫동안 꿈꿔온 삶 그 자체입니다. 어쩌면 좋은 집이라는 것은 가장 비싼 집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가장 정확하게 담아낸 집’인지도 모릅니다.

